지금은 수많은 한국 선박들이 세계 바다를 누비고 있지만, 한때 우리나라엔 '선장'이라는 직업조차 생소하던 시절이 있었죠.
그 암흑기를 뚫고 한국 최초의 항해사이자 첫 민간 선장이 된 인물이 있습니다. 그가 바로 신순성(申淳成) 선장입니다.
이번글에서 간단히 소개 올리겠습니다.
선장이라는 단어조차 낯설던 시대, 그 중심에 신순성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수많은 한국 선박들이 세계 바다를 누비고 있지만,
한때 우리나라엔 '선장'이라는 직업조차 생소하던 시절이 있었죠.
그 암흑기를 뚫고 한국 최초의 항해사이자 첫 민간 선장이 된 인물이 있습니다.
그가 바로 신순성(申淳成) 선장입니다.
신순성은 1923년생으로,
광복 직후인 1947년, 조선해사공학교를 졸업하고
대한민국 1호 항해사로 면허를 취득했습니다.
이후 1950년, 정식으로 한국 국적 상선의 첫 민간 선장에 오르면서
‘한국 상선의 선구자’로 불리기 시작했죠.
그의 첫 배는 ‘부산호’.
이 배를 이끌고 부산-일본-홍콩 항로를 왕복하며
당시 폐허 상태였던 한국 해운업에
실질적인 ‘운항의 씨앗’을 뿌렸습니다.
바다는 넓고, 현실은 거칠었지만…
신순성 선장이 활동하던 당시 한국 해운은
인프라도, 인력도, 자본도 거의 없는 ‘0의 시대’였습니다.
해외에 나가면 한국 선장이라는 이유만으로
멸시와 불신을 받는 일도 비일비재했죠.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직접 외국 항만과 교섭하고, 서류도 자필로 정리하며
‘한국인도 배를 몰 수 있다’는 사실을 전 세계에 증명해냈죠.
그의 노력은 단순한 배 한 척의 운항이 아니라,
한국 해운 자존심의 시작이었습니다.
후배들을 위해 모든 항해 기록을 남겼습니다
신순성 선장은 ‘항해는 기록이다’는 철학을 가졌던 인물이었어요.
그는 매 항차마다 항로, 기상, 화물, 통관상황까지
일일이 기록으로 남겼고,
그 기록은 후배 선장들에게 최고의 교과서가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해운 교육과 후진 양성에도 힘을 쏟아
오늘날 국적선단 확대의 기틀을 마련한
실제적인 리더이자 멘토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해운의 기틀, 신순성이라는 이름으로 남다
우리가 지금 태평양을 건너는 한국 상선을 볼 수 있는 건
신순성 같은 선구자들이
“길도 없던 바다 위에 길을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한국 최초 항해사이자 첫 민간 선장이라는 타이틀은
그저 상징적인 게 아니라
대한민국 해운사의 출발선을 뜻하는 말이에요.
그가 남긴 기록, 정신, 항해의 발자취는
지금도 바다 위에서 묵묵히 방향타를 잡고 있는
수많은 항해사들의 나침반이 되어주고 있습니다.